영화보면 600원, 출국땐 1만원…몰래 떼던 부담금 사라지나

입력 2024-01-07 18:25   수정 2024-01-15 15:53


외교부는 1991년부터 여권 발급자 대상으로 1만5000원(10년 유효 복수여권 기준)을 국제교류기여금 명목으로 걷고 있다. 시행 당시 상대적으로 유복한 해외여행객에게서 기부금을 걷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부담금을 연간 해외여행객이 2000만 명에 달하는 지금도 걷고 있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07년부터 극장에서 영화를 본 관람객을 대상으로 입장권 가액의 3%를 영화입장권부과금으로 징수한다. 영화 제작자 및 배급사가 아니라 관객이 낸 돈으로 영화 사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재계와 시민단체는 그동안 정부가 행정편의를 앞세워 국민과 기업에 준(準)조세인 부담금을 불합리하고 과다하게 징수하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국제교류기여금, 영화입장권부과금 등이 대표적 사례였다.

윤석열 정부는 당장의 재정 수입 감소를 무릅쓰고라도 이런 불합리한 부담금을 대폭 줄이고 감면 대상을 확대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즉각 들어가겠다는 계획이다.
‘쌈짓돈’으로 변질된 부담금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02년 7조4000억원이던 법정부담금 징수액은 올해 24조6157억원으로 세 배가 넘는다. 같은 기간 부담금 종류는 102개에서 91개로 줄었지만, 국민과 기업이 영위하는 각종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징수액이 늘어났다. 정부도 2002년 부담금관리 기본법을 제정한 뒤 무분별한 신설을 억제하긴 했다. 매년 부과 타당성 등 운용 현황도 평가한다.

문제는 수십 년간 부담금을 관행적으로 걷어온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반발 때문에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반회계 대신 기금 또는 특별회계에 귀속되는 부담금은 정부와 지자체가 손쉽게 사업비를 확보하는 사실상 ‘쌈짓돈’처럼 써왔기 때문이다. 올해 징수가 예정된 24조6157억원의 부담금 중 86.6%가 중앙정부의 기금과 특별회계에, 나머지 13.4%는 지자체와 공공기관 수입에 귀속된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부담금이 상대적으로 조세저항이 작고 국회 통제도 덜 받는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에 소극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재계와 시민단체는 시대에 뒤떨어진 각종 부담금을 폐지해야 한다고 꾸준히 지적해 왔다. 경제개발 시기 재정 여력이 부족해 공익사업 재원을 부담금에 의존한 1970~1980년대와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부담금은 공익사업 재원 충당을 위해 해당 사업과 이해관계가 있는 국민과 기업에 부과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원칙을 위배하는 부담금도 상당수다.
민간 전문가들과 개혁 착수
기재부가 추진하는 구조조정의 방향은 불합리한 부담금 폐지와 감면 대상 확대다. 기재부는 올해 기준 91개 부담금의 존속 여부를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부담금 부과 원칙, 사용 용도, 존속 필요 여부 등에 대해 매년 소관 부처가 자체 심사한 뒤 기재부에 통보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기재부는 우선 작년 말 민간위원들로 구성된 부담금운용평가단에서 폐지 권고를 받은 부담금은 올 상반기에 폐지하겠다는 계획이다. 골프장 이용객에게 걷는 회원제 골프장시설 입장료 부가금, 농·어민들에게서 걷는 전기사용자 일시부담금, 광물 수입부과금 및 판매부과금 등이 대상이다. 손해보험사들이 내는 화재보험협회 출연금도 폐지 대상으로 꼽힌다.

이 밖에 여권 발급자를 대상으로 걷는 국제교류기여금, 모든 출국자를 대상으로 걷는 출국납부금(인당 1만1000원)처럼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부담금도 존속 여부 및 경감 방안을 면밀하게 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최근 ‘부담금 제도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개선이 시급한 부담금으로 △영화입장권부과금 △국제교류기여금 △출국납부금 등을 꼽았다.

부담금을 개편하기 위해선 소관 법률인 부담금관리기본법과 함께 징수 근거가 명시된 개별 법률을 모두 개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각 부처와 지자체 및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불특정 대상에게서 걷은 부담금을 통해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아온 업계 반발이 이번 구조조정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경민/이광식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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